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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을 달리는 얼리아답터 교회. 앞으로는 예배도 예배당에 나오지 말고 그냥 인터넷이나 TV 방송을 통해서 드리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십일조를 1년 연속으로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낸 사람을 대상으로 추첨해서 김치냉장고를 주는 것도 좋겠네. 무이자 할부로 1년 감사헌금 미리 내기는? 사실 위에 있는 것 보다 압권은 아래에 있는 것이라 생각함. 도대체 어떤 근거와 충만한 믿음으로 이런 걸 기획해 냈을까? 새로운 기술과 신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라는 인간은 그저 낯선 것은 그렇다 치고 대략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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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보면서 '헌금은 준비해서 하자는 뜻'으로 이해하고 싶었지만, 굳이 가사에 천원짜리를 넣은 것을 보면 그런 건 아닌 듯 하다. 만약 내가 그런 뜻으로 가사를 만들었다면, '헌금은 준비 않고 지갑 속에서 있는 지폐 기막히게 찾아내는 자 주님은 몇 백만 원이라도 원하지 않죠.'라고 했겠지.

특정 교회나 사실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단지, 종교를 기독교로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사진들을 보고 할 수 있는 말이 고작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건 아니에요.' 정도라는 것이 싫을뿐. 내 생각에는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분명 또 이것에 대해서 '옳은 행동'이라고 힘주어 말할 힘있는 세력들이 있다는 것. 그런 것이 얼마나 사람은 물론이고 주님께도 통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2009/09/03 14:11 2009/09/0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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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가에 있었던 일 중에서 가장 슬펐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 바람으로는 이번 만큼은 생각없는 국민들이 한 사람의 죽음을 가지고 말장난을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주위를 돌아다녀 보면 이번 일로 너무 서로간에 상처가 되는 말들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 일에 대해서 왜 그렇게 음모론 또는 비판들이 많은지.

보수와 진보 등 정치적 성향을 떠나 다 같이 한 나라의 대표자였으며, 국민을 위해 일한 공직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했으면 합니다. 개인적인 견해를 덧붙이자면,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민주주의를 사랑했으며,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려 애쓴 멋진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안타깝지고 하고요. 자신이 자신의 벽을 허문만큼 감당해야 할 시련이 많았지만, 이제는 편히 쉬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2009/05/29 17:44 2009/05/29 17:44

감원

2009/01/31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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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 세계적으로 감원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다. MS, IBM 등의 IT업계부터 미국의 AT&T, 캐터필러, TI, 필립스, 혼다까지 직종을 불문하고 꽤 많은 회사들이 감원을 발표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 많은 기업들이 감원을 통한 구조조정을 할 것이라고 한다. 한국은 대규모 감원 자체가 제도적으로 어려운 면이 있기 때문에 외국에 비해서는 덜하지만, 한 소프트웨어 관련 기업에서도 제법 많은 수의 직원을 해고하거나 해외 법인을 철수하기도 등 감원바람이 불고있다.

이런 감원바람은 전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경제위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많은 경제관련 단체들이 앞으로의 경제상황도 언제 좋아질 것인지를 예측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에서는 방어적인 경영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불확실한 미래에서는 어쨌거나 회사는 재무구조를 탄탄하게 가져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결국 현금 또는 그에 상응하는 유동성과 고정가치를 가진 자산을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경제가 언제 좋아질 것인가? 그것을 예측하는 자체가 조심스럽기도 있지만, 사실 경제 상황이 다시 좋아진다는 자체에 대해서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좋아진다.'라는 말이 성장을 뜻한다면 나는 조심스럽게 우리가 최근까지 경험했던 비약적인 성장은 당분간 힘들 것이라는 시각 때문이다. 산업혁명으로 부터 시작하여 정보혁명까지 인류는 많은 innovation을 경험해왔지만, 지금 현 시점에서 성장을 예측하기에는 아직 이렇다할 innovation이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혁신이 나온다면 성장을 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우리가 가진 정보혁명의 엔진 역시 동력이 멈춰간다는 느낌이 든다.

실적악화를 발표하며 감원을 하는 업체들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특히 한 SW 업체의 경우는 주목할만 하다. 작년 매출이 그 전 해와 비교할 때 170% 가까이 되는 실적임에도 불구하고 감원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해는 된다. 특히 SW업체 같은 경우에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제조업은 생산 설비를 매각하는 방법을 취할 수도 있겠지만, SW업체와 컨텐츠 업체는 매각할 설비가 거의 없고 인건비가 지출의 많은 비율을 차지하기 때문에 때문에 감원이 가장 효율적인 실적개선의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주3일 근무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job sharing의 하나다. 노동시간을 줄임으로 고용을 촉진하고 실업률을 낮추자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움직임을 환영한다. 최근 역사를 보면 전 세계가 지나치게 성장에만 열을 올린 것 같아 보이는데 이제는 성장은 한 템포 쉬면서 안정적인 조율을 할 기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특히 경제 선진국은 그들의 모임에서 이러한 논의를 활발하게 할 필요가 있다. 경쟁에 너무 몰두하다 보면 많은 부작용이 생기고, 지금의 현상 역시 조금 더 민감하게 바라본다면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job sharing이 국가 하나만으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긴 하다. 어느 나라가 자국의 경쟁력만 떨어지기를 바라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우선 경제 선진국 부터 합심해서 성장속도를 조절하면서라도 이러한 움직임은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생산력도 좋아지고, 사람의 힘이 필요없게 되는 것들이 많아질 것이다. 지금의 구조에서라면 자연히 일자리도 감소하게 될 것인데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실업률을 낮출 수가 있을까? 물론 기득권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에 찬성하기 힘들겠지만, 앞으로 계속 될 실업 및 구직난이 사회 전반적으로 불어닥치는 심각성을 더 강조해주리라 생각된다.

실업 및 감원 등으로 찾아오는 사회적 진통이 앞으로는 더 심하게 되지 싶다. job sharing은 전체적인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도 않을 것이고 기득권의 반발도 심할 것이라서 말이다. 특히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해고를 걱정할 필요가 없고 차라리 성장을 더 하는 것을 원할 것이기 때문에 더욱 비관적이기는 하다. 그리고 기업 역시 자신의 경쟁력과 직원들의 임금을 스스로 낮춰가며 이런 일을 하지도 않을 테고.

성장이 멈춘 상태에서 지속되는 경쟁 때문에 감원이 필요하다면 생산력의 증가로 일어나는 감원도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이 두 가지는 한 번의 움직임이 아니라 지속되리라 생각한다. 현재의 감원열풍이야 어떻게든 꺼질지도 모르겠으나, 앞에서의 상황이 실현된다면 실업률은 더욱 높아지지 싶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정부는 innovation에 투자를 하는 것도 아니고 job sharing도 아니면서 뭐 어떤 방법으로 실업률을 낮추고 고용을 촉진하면서 성장도 지속시켜서 국가 경쟁력도 올리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비현실적이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경제'성장'을 이루겠다고 하니 신적인 능력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착각까지 들게 한다.
2009/01/31 08:17 2009/01/31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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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탓인지 나는 내가 가진 삶의 철학 또는 방향에 반대 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좀 싫어하는 면이 있었다. 내가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행동을 스스럼 없이 하는 사람들이 참 싫었고 행여나 그 사람이 잘 되면 왠지 못 마땅하기도 했달까. 그런데 최근에는 생각이 좀 바뀌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은 단지 나와 다를 뿐인데 그 사람에 대해서 판단하며 싫은 감정을 가지는 것은 매우 나쁜 행동 같더라. 게다가 그런 생각의 근원이 '내가 옳다.' 라는 매우 교만한 생각이라는 것.

비록 내가 추구하는 이상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도 그에게는 충분히 배울 것이 많은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내가 추구하는 방향을 평가받을 수 있는 거울이 될 수도 있고 말이다. 내가 제대로 된 마음을 가졌다면 그들을 축복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필요하지 싶더라. 오히려 내가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그들이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것일 수도 있는데, 건방지게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사람에 대해서 판단하는 걸 보면 나도 아직 많이 멀었다는 생각.

그렇게 생각하니 어떤 경우에서라도 누군가를 싫어하며 비난하는 자체가 매우 나쁜 마음같이 느껴진다. 조금 더 성숙해지려면 나를 채찍질해야지 남을 판단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부끄러운 행동인데 말이다. 예전을 돌아보면 그렇게 어떤 사람을 비난하고 평가했었던 경우가 제법 있었는데 얼마나 부끄러운 행동이었는지. 무슨 이유가 있든지 남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것은 죄라는 말이 마음속에서 깊이 느껴진다. 그 마음의 근원을 따지고 보면 더욱.
2008/12/14 21:27 2008/12/14 21:27

노방전도 유감

2008/10/08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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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수님의 존재와 그가 이루신 일을 믿는 기독교인이다. 이단이니 개독교니 하는 정치적인 견해로의 종교접근은 잘 모르겠고 그냥 나는 선조가 혹은 선생이 가르치는 대로 바른 대로 예수님을 믿으려고 노력하는(그렇기 때문에 실수도 엄청 많이하는) 한 사람이다. 그러던 어느날 주말에 부산에 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길에 역에서 여러 사람을 보며 내 맘속에 어떠한 생각이 있었다. 흔히 '노방전도'라고 말하는 전도를 하고 계신 분이었다.

노방전도에 대해 나는 기본적으로 그렇게 전도하기 위해 나서는 분들의 용기를 존경하긴 한다. 효율성이나 역효과는 뒤로하고 어쨌거나 대중 앞에서 저렇게 쉴 틈 없이 말씀 선포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적어도 나보다는 믿음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과 10m 거리도 안 두고 이렇게 여러 사람이(세 사람이) 각기 다른 말과 노래를 하고 있으니 그보다 더 짜증 나는 소음은 없었다. 무슨 말인지도 못 알아 듣겠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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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는 큰 확성기로 음정 떨어지는 목소리로 노래방처럼 찬양하는 사람. 다른 쪽에서는 너무 출력을 높여서 디스토션 걸린 앰프로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 간다'라는 결과적인 이야기를 반복하는 사람, 한쪽에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는 시민을 향해 손짓하면서 계속 무슨 말인지 모를 말을 외치는 사람. 어떤 마음에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은. 나의 교만에서 비롯된 행위인지 아니면, 저건 올바르지 않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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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던 길을 멈추고(어차피 기차 시간은 아직 남았기 때문에) 가만히 하는 말을 들어 보았다. 역시나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 모든일이 형통하고 천국간다는 이야기. 짧은 시간에 얼마나 깊고 많은 복음을 전할 수 있겠느냐만, 왠지 저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얼마나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아줄지가 의문이었다. 역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의 '나는 만사가 형통하고 천국 간다.'라고 하는 것을 누가 주의 깊게 들어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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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비판적인 생각을 하면서, '난 정작 예수님을 제대로 전해본 적도 없으면서 저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은 무슨 마음인가?'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아직 어떤 마음이 합당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예수님이 길거리에서 복의 매개체 정도로 여김 당하는 건 싫다. 그리고 현대 시대에서 저렇게 확성기로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사람보다는 짜증내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비단 예수님뿐 아니라 많은 이가 동의할 옳고 좋은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저 방법은 아니라는 사실. 그만큼 소식과 정보를 담는 매체가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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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신학자나 목회자가 아니라서 정확한 판단은 잘 못하겠지만, 적어도 몇 가지 확실한 것은, 저 세 사람은 엄청난 소음을 역 앞에서 내고 있었다는 것이고(게다가 서로의 거리도 얼마 되지 않아서 그 소음이 섞이기까지 했다는 것이고), 지나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히려 예수님의 존재도 짜증 나게 만들었다는 것이고, 말씀 역시 너무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 아닌 세상적인 욕심에 편향적이었다는 것이다.
2008/10/08 23:36 2008/10/08 23:36

변하는 것

2008/10/0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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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한 번 오더니 거의 이틀 사이에 날씨가 확 변했다. 그렇게 뜨거웠던 여름도 하루 만에 식어버린 것이다. 날씨를 보면서 문득 세상 모든 것이 그런가 싶다. 여름의 뜨거움 때문에 도저히 이번에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가을도 하루 만에 성큼 다가온 것처럼. 그렇게 정말 바뀌지 않을 듯한 믿음도 감정도 떨어지는 그 순간은 찰나라는 것을...
2008/10/08 20:09 2008/10/08 20:09

2008/06/15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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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퇴고할 때 저도 모르게 글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쓴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산발적인 미디어를 많이 접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단어의 어원과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뜻만 전달하는 정도로 사용한 탓이겠죠. 예로는 '올인하다'와 같은 단어를 들 수 있겠네요. 특히 문화적인 어원과 내재한 의미를 생각하면, 글에서 쓸 일은 거의 없어 보이는데 말이죠.

거두절미로 대표되는 실용적 행동이 대세인 시대에 '뜻만 통하면 됐지, 뭘 그리 따지느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글이나 논리에서 실용적이라는 것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글의 탈을 썼지만, 그 기본이 갖춰진 글을 찾아보기 어려운 인터넷 게시물을 많이 접하면, 이러한 생각은 강해집니다. 게다가 출판된 문서에서조차, 그렇게 쓰면 안 되는데 구어 풍으로 쓴 문서들도 자주 봅니다. 글에 대한 학습은 긴 시간의 학습과 연습이 필요한 것인데, 이러한 필요는 상대적으로 묻힌 까닭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적당한 단어와 수사법을 찾아 표현하는 과정이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이 누구의 어떤 논리를 이용하여 접근하는지, 또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개할 것인지, 자신의 논리의 약점과 강점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자신의 뜻을 펴는데에 큰 무기가 됨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100분 토론'과 같은 TV프로그램을 보면 '내가 저기 나가도 쟤네들보다는 말 잘하겠다.'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것은 자신의 의지와 열정보다 여태껏 해온 노력과 연습이 아직 적당한 위치에 못 미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글을 대표로 하는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고 설득하기 위한 노력과 연습'은 다른 무엇보다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서 시각적으로 나타나는 효과가 빠르지 않고, 따라서 재미도 없습니다. 그래서 글을 '지식과 경험의 축적'이라고 하는지도 모르죠. 외국어도 하랴, 전공도 하랴, 표현력도 익히랴 언제 그 많은 것을 다 하나 싶기도 하겠지만, 표현의 방법과 과정을 익히는 공부는 성숙한 사람으로 발전하는 단계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2008/06/15 13:10 2008/06/15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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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선택. 졸업을 앞두거나 자신의 진로를 정해야 하는 시기의 사람이라면 참 고민 되는 순간일 겁니다. 인터넷 서핑 중에 뜬금 '직업 선택 십계'라는 글을 보고 퍼 왔습니다. 요즘과 같은 시기에 아주 딱 common sense와 통하는 십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 무엇보다 하는 일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 타당한 곳을 택하라.
둘,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약해지지 말고 내가 원하는 곳을 택하라.
셋, 장래를 위해 승진의 기회가 자주 생기는 곳을 택하라
넷,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택하라.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는 위험하다.
다섯,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을 직접 공략하라. 그곳이 블루오션이다.
여섯, 현재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장래성을 중요하게 여겨라.
일곱, 재물 뿐 아니라 사회적 존경도 중요한 요건이다.
여덞, 가장자리로 가지마라. 오직 한 가운데를 바라보라.
아홉,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의 의견을 존중하라. 그것은 너의 독단을 막는다.
열,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은 자살 행위이다.

어쩌면 당연한 삶의 자세인지도 모릅니다. 특히, 유물론적인 사상을 가졌다면 이 이상의 선택은 없겠죠. 하지만, 이 삶이 '안정과 행복'을 가져다 줄 수는 있을지는 모르지만 진정한 삶의 의미를 가져다 줄지는 의문입니다. 게다가 이런 삶이 우리가 바라보는 가치와 모습에 합당한 것인지, '인간이 왜 사나?'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해 줄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전 요즘 사회가 돌아가는 틀을 보며 '자살자의 증가'를 큰 걱정거리로 염려하고 있습니다. '너가 못하는 건 너가 게으르기 때문이다.', '무한경쟁속에서 살아남아라. 그렇지 않으면 넌 평생 패배자가 된다'라는 그 두 개의 문장이 말해주는 분위기. 마치 마라톤 선수에게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이야기 하며 단거리 선수인 마냥 뛰게 만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길게 호흡하고 레이스를 해야하는 청년들을 위해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아 보이는데 말이죠.

사실, 위에 있는 십계는 거창고등학교에 걸려있는 '직업 선택 십계'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패러디 보다는 반대로 썼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죠. 특히, 자신이 신앙이 있고 믿음이 있다면 더욱 가슴 깊이 생각을 해 볼 문제라고 봅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아래 보다는 위를 기준으로 자식을 훈육하고 그것을 진리라고 말하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시골의 작은학교 강당에 걸려있는 낡은 '직업 선택의 십계'를 보면서 '좁은 길로 가라'는 말씀을 생각해봅니다.

하나,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둘,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셋,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넷,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다섯,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여섯,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덞,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홉,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열,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2008/04/07 09:46 2008/04/07 09:46

깨달음에 비해...

2008/04/02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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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큰일을 치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저는 깨달음의 비해 행동 변화의 속도는 더딘 것 같습니다. 사람이 드라마틱하게 딱 하루아침에 마음먹은 대로 변하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절대 그렇지 않고 말이죠. 조금씩 변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 속도가 워낙 더디니 걱정입니다. 이러다 좋은 때는 다 놓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 갑자기 뜬금없는 자아성찰을 시작하는 걸 보니 또 시험기간이구나 싶네요.
2008/04/02 00:44 2008/04/02 00:44

답답한 토론

2008/03/2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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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와 서로 의견을 나눌 때 가장 답답함을 느꼈던 때는 언제세요? 그전에 이 질문에 모두가 똑같은 답을 할 수 있을까요? 이야기로 들어가서, 다른 이와 의견을 나누면서 흔히 발견하는 것은 바로 '이견'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대방과의 이견은 답답함을 느끼기보다는 토론의 근본적인 이유가 되죠. 사람의 생각은 같기 어렵고, 아무리 성향이 비슷한 사람이더라도 같은 사실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누구나 인지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상대방과의 지식적 차이는 어떨까요? 물론 토론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수준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면 중요한 것은 아닐 겁니다. 상대방이 모르는 것이 있다면 알려주고 또 함께 알아가면서 의견을 나눌수도 있지요. 게다가 그런 토론은 서로의 사고력과 통찰력을 넓히는 장점도 꾀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자기의 생각을 아주 진리인 듯 믿는 사람과 의견을 나눌 때 큰 답답함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참 토론하기 싫어지는 스타일입니다. 의견을 나누려고 했을 뿐인데 원치않는 설교를 듣게 되지요.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런 성향이면 좀 더 상황이 강해집니다. 그들에게 반대 의견은 있을 수가 없고, 반대 의견은 자신의 신념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생각은 '자신은 옳고, 자신의 생각에 못미치면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라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아마도 토론할 기회가 많이 없었거나 많은 이들 앞에서 설득의 작업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겠죠.

특히, '위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권위'있는 자들과 토론할 때 위축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권위'는 자신이 부여하는 '위신'과는 달라서 그 말과 주장에 힘이 있으며 그 논리도 정확한 경우가 많죠. 그럼에도 그 답답한 사람들은 의견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권위 있는 사람을 깎아내리고자 그 사람의 다른 면을 보며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토론은 '싫고', '좋고'를 강조하는 것은 아닌데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똑같이 싫어하기를 바라고 또 그것이 만족되지 않으면 강제하려 합니다. 좋지 않은 버릇입니다. 의견을 나누는 데에 자신의 자존심과 위신을 담게 되면 그것은 마치 자기에게 울타리를 치는 것과 같은데 말이죠. 결국, 폐쇄적인 사람으로 낙인이 찍힙니다.

세상에는 진리가 있지만 애석하게도 사람의 삶에서 '진리'를 다루는 경우는 많이 없습니다. 진리보다는 실리를 다루는 것들이 많죠. 그런 것들은 정답도 없습니다. 혹시, 정답이 없는 문제에 정답을 가지고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자신이 똑똑하거나 통찰력이 있다기보다는 위험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의견을 나누고 설득하는 작업이 중요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듯하지만, 정작 그런 문화에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반대되는 의견에 열려있는가?'. 그것은 천성도 아니고 지식으로 만들어 지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한 과제인 것 같네요. 그러려면 다른 무엇보다 의견을 많이 나누고 여러 사람과 토론을 하는 노력이 최고의 연습방법이겠죠?
2008/03/26 12:03 2008/03/2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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