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업 선택. 졸업을 앞두거나 자신의 진로를 정해야 하는 시기의 사람이라면 참 고민 되는 순간일 겁니다. 인터넷 서핑 중에 뜬금 '직업 선택 십계'라는 글을 보고 퍼 왔습니다. 요즘과 같은 시기에 아주 딱 common sense와 통하는 십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 무엇보다 하는 일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 타당한 곳을 택하라.
둘,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약해지지 말고 내가 원하는 곳을 택하라.
셋, 장래를 위해 승진의 기회가 자주 생기는 곳을 택하라
넷,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택하라.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는 위험하다.
다섯,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을 직접 공략하라. 그곳이 블루오션이다.
여섯, 현재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장래성을 중요하게 여겨라.
일곱, 재물 뿐 아니라 사회적 존경도 중요한 요건이다.
여덞, 가장자리로 가지마라. 오직 한 가운데를 바라보라.
아홉,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의 의견을 존중하라. 그것은 너의 독단을 막는다.
열,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은 자살 행위이다.
어쩌면 당연한 삶의 자세인지도 모릅니다. 특히, 유물론적인 사상을 가졌다면 이 이상의 선택은 없겠죠. 하지만, 이 삶이 '안정과 행복'을 가져다 줄 수는 있을지는 모르지만 진정한 삶의 의미를 가져다 줄지는 의문입니다. 게다가 이런 삶이 우리가 바라보는 가치와 모습에 합당한 것인지, '인간이 왜 사나?'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해 줄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전 요즘 사회가 돌아가는 틀을 보며 '자살자의 증가'를 큰 걱정거리로 염려하고 있습니다. '너가 못하는 건 너가 게으르기 때문이다.', '무한경쟁속에서 살아남아라. 그렇지 않으면 넌 평생 패배자가 된다'라는 그 두 개의 문장이 말해주는 분위기. 마치 마라톤 선수에게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이야기 하며 단거리 선수인 마냥 뛰게 만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길게 호흡하고 레이스를 해야하는 청년들을 위해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아 보이는데 말이죠.
사실, 위에 있는 십계는 거창고등학교에 걸려있는 '직업 선택 십계'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패러디 보다는 반대로 썼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죠. 특히, 자신이 신앙이 있고 믿음이 있다면 더욱 가슴 깊이 생각을 해 볼 문제라고 봅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아래 보다는 위를 기준으로 자식을 훈육하고 그것을 진리라고 말하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시골의 작은학교 강당에 걸려있는 낡은 '직업 선택의 십계'를 보면서 '좁은 길로 가라'는 말씀을 생각해봅니다.
하나,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둘,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셋,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넷,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다섯,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여섯,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덞,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홉,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열,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