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6살 때 아버지께서는 펜탁스의 'P-50'이라는 카메라를 50만 원 정도의 거금을 들여서 사셨다고 합니다. 6살이면 1989년 정도니 그 시절에 50만 원이면 상당한 금액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좋은 카메라도 아버지의 손에서는 외로웠습니다. 아버지께서 그 카메라로 찍으신 사진은 제 생각에 다 합쳐봐야 300장도 안 되니 말이죠. 덕분에 카메라는 자신의 황금기를 장롱에서 보내다가 뜬금 늙어버렸죠. 카메라가 비싼 물건이라 함부로 다루는 건 어렵긴 하겠지만 그래도 많은 추억을 '남기는 것'이 본전을 뽑는 최고의 길인 것 같습니다.
사진을 찍는 것은 추억을 담는 작업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진을 찍어보면 추억이고 뭐고 그냥 귀찮습니다. 여행을 할 때도 카메라가 있으면 여행한다는 느낌보다는 출사를 나간듯한 느낌이 들 정도죠. 카메라를 잡는 동시에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구경거리'라기 보다는 '피사체'가 되니 더욱 그렇습니다. 인물사진 역시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죠. 모델이 아니고서야 카메라나 포즈에 익숙하지 않으니 도통 자연스러운 사진을 만들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자연스러운 표정을 잡기 위해서 계속 카메라를 파지하고 있을 수도 없으니 말이죠.
하지만, 그렇게라도 일단 찍어 놓은 사진은 소중한 재산이 됩니다. 사진을 통해서 예전에 다녀온 여행을 다시 떠올려 볼 수도 있고, 보고 싶지만 만나기 어려운 사람의 얼굴도 쉽게 볼 수 있으며, 행복했던 추억도 쉽게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멋진 추억을 담은 사진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귀찮긴 하지만 제가 계속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도 사진이 훌륭한 '추억의 보조도구'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지요.
위의 사진은 제 사진첩에 있는 인물사진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제 여자친구님의 사진입니다. 친한 친구로 지내다가 예상하지 못한 계기로 연인이 되었죠. 그때는 잘 몰랐는데 연인이 되고 나서 보니 사진이 많은 것은 그만큼 함께한 추억도 많았음을 알게 되더군요. 사진이 많은 까닭에 비슷한 구도와 표정의 사진도 제법 있긴 하지만 그것들이 같은 느낌을 주지는 않습니다.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도 사진이 사진 이상의 무언가를 더 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